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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본 세상이야기

임실의 기적과 치욕에서 배워야 할 것들


'임실의 기적!''변변한 학원 하나도 없는데...' '영어 등 3개 과목서 기초학력 미달학생 제로' '맞춤식 공교육의 결실'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공개된 지난 16일, 전북 임실군의 쾌거가 도배된 신문을 보며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나의 초등학교 6학년 홍천표 담임선생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교생이라야 달랑 300여명에 불과해(현재는 학생이 더 줄어 100명도 채 안된다) 학년당 학급이 한반에 지나지 않았던 익산신흥초등학교에 부임한 홍 선생님은 사재를 털어가며 우리를 가르쳤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 담임선생님은 서울 아이들이 보는 시험지 등을 어렵사리 구해 밤새워 등사기로 인쇄해 우리에게 나눠주며 문제풀이를 해줬었다. 전압이 낮아 침침한 백열전구아래서 두터운 안경을 쓴 채 철필로 등사원지를 긁던 홍 선생님의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는 그 덕택인지 그해 중학교 입시에서 매우 좋은 성적을 올렸었다. 아마도 요즘으로 치면 '방과후 학교'를 선구적으로 성실히 운영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안병만 교육과학부 장관 직접 나서서 "전국에서 가장 잘한 학교는 강남도 아니고 전북의 한 낙후지역인 임실군...임실 지역에서는 교육장과 학교장이 학부모들을 설득해 매일 6시까지 방과후 학교를 운영했고...교장의 리더십과 교사들의 열정이 학업 성취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 때도 "아! 아직도 시골에는 상록수 같은 선생님들이 많은 모양이구나"라며 감동했다.

두 번째는 박사마을로 유명한 임실군 삼계면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구문이지만 삼계면은 인구가 1,800여명에 지나지 않는데도 무려 90명에 가까운 박사가 배출돼 전국적으로 박사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삼계면출신 박사가운데 학계에 잘 알려진 사람만도 한상진 전 정신문화연구원장을 비롯 감학수, 노상순 전 전북대교수, 허세욱 전 고려대교수 등 즐비하다. 하여 난 "그러면 그렇지. 박사골을 둔 임실은 뭔가 다르긴 다르네"라며 역시 감동했다.

그러나 이 감동은 불과 하루만에 '임실의 치욕'으로 뒤바뀌었다. 교육청과 일선학교 등이 짬짜미한 총체적 조작의 산물이란 조사결과가 나왔다. 참담했다. 결과적으로 임실의 쾌거는 기적이 아니라 조작이었다는 씁쓸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같은 비교육적 사태에도 불구하고 일제고사 등 경쟁만능주의적 교육정책을 지속하려는 정부의 오만에 혐오감이 치솟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엉터리 결과를 놓고 보수언론은 학교장의 리더십과 교사들의 헌신이 빚은 기적이라며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찬양했었다.

이번 임실군 사태를 거울삼아 어린 학생들을 경쟁사회로만 내모는 현 정부의 교육철학을 근본부터 재검토해야만 한다. 경쟁지상주의 교육이 학업성취도를 제고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가설은 자율에 바탕한 교육으로도 세계최고의 학력수준을 올리고 있는 핀란드의 사례 등으로 볼 때 낭설이라는 게 교육학계의 일반적 지적이다. 정부는 야만적인 일제고사와 성적공표정책을 당장 중지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