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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본 세상이야기

신경민 앵커를 위한 멘트



지난 13일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가 마침내(?) 마이크를 놓았다. 아니 잘렸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는 지난 1년여 동안 구축해온 특유의 촌철살인 20초짜리 클로징멘트에서 "회사결정에 따라 오늘 자로 물러납니다. (중략)할말은 많아도 제 클로징멘트를 여기서 클로징하겠습니다."라고 소회를 피력했다. 평소 그의 클로징멘트 팬이었던 난 그의 정말 마지막 클로징멘트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먼저 고백하자면 신 앵커는 나의 고교, 대학 선배이자 언론계의 선배이다. 또한 9.11테러가 나던 시절 함께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던 사이이기도하다. 물론 난 요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의 앵커멘트보다 언론인 신경민을 더 흠모하는 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 앵커는 이제 정치인으로 변신한 정동영 전 장관과 1990년대 까지만 해도 MBC의 내로라하는 차세대 스타 앵커였다. 고교, 대학 동문인 둘은 함께 MBC에 입사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주요 간판 뉴스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우리 전북의 자랑이었다. 언론계에선 전북에서 많은 언론인이 배출된 데 더해 유명 앵커가 다수 발탁된 게 자주 화제로 오르곤한다. 실제로 KBS와 MBC의 저녁뉴스 앵커의 대부분을 전북출신이 맡았고 현재 KBS 박영환 앵커와 MBC의 박혜진 앵커우먼 전북출신이다. 그 중에서도 신 앵커와 정 전장관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둘의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순발력이나 언변은 정 전장관이 앞섰지만 중후함과 사건의 이면에 담겨있는 사회적 의미를 파헤치는 집요함등에선 신 앵커가 탁월했다. 혹자는 정 전장관이 타고난 방송인이었다면 신 앵커는 다분히 후천적 노력으로 정상에 오른 경우라고도 했다. MBC에서 먼저 빛을 본 것은 정 전장관이었지만 그가 정치권으로 입문한 후엔 신 앵커가 뒤를 이었다.

신 앵커의 다소 현학적인 멘트에 대해 여러 평가가 있지만 난 충분히 그 행간을 이해하는 편이다. 평소 그의 철학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향 전북의 알아주는 문벌가 출신이다. 신석정 시인이 그의 작은 할아버지이며 선친 신현근은 전북일보 편집국장과 주필, 전북도민일보 사장을 역임한 전북 언론사의 거목이다.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해서인지 매우 박식하지만 항상 두 번 생각하고 움직이는 선비형 인간이다. 때문에 난 그가 지난 군사정권시절 MBC노조가 파업투쟁할 때 최선봉에 서지 않은 데 대해 후배들이 질책할 때 "인간을 보고 평가하자"며 변호했었다. 역시 이 같은 이력 탓에 노조위원장 출신인 최문순씨(현 민주당 의원)가 사장이 됐을 때 그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잣대에 비추어 사리에 어긋나다 싶으면 항상 할 말은 하는 말 그대로 딸깍발이였다. 수차례의 해외연수와 특파원을 했음에도 골프도 안배운데다 술, 담배도 안한다. 그는 현 MB정권 못지 않게 과거 참여정부에도 날 선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내 기준으로 보면 그는 자신의 주전공인 외교 안보분야를 제외하곤 다소 보수적인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이념적 패러다임은 클로징멘트의 "제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라는 문구에 잘 나타나있다. 진보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평균과 상식을 존중하는 건강한 중도인인 것이다.

바로 그처럼 '평균적 상식인'인 그가 이번에 사실상 정치권의 외압에 휩쓸려 앵커직을 내놓았다. 현 정권을 까칠하게 평했던 그의 클로징멘트가 결국은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지난 1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앵커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하는 동안 하루하루 열심히 하겠다"고 몇 달후의 결과를 예측했었다.

신 앵커의 중도하차(앵커를 13년 한 엄기영사장에 비하면 엄청난 단명이다)는 전북출신 한 언론인의 불명예이기 이전에 한국 언론으로서도 불행한 역사로 남을 것이다.

각설하고 신 앵커같은 건전한 중도보수마저 용납하지 못하는 우리 한국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쿼바디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