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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본 세상이야기

윤창중 사건이 정작 놓친 것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우리나라는 근세에까지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려왔다. 바로 이런 대한민국의 대외적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을 모시고 나선 첫 해외순방에서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할 짓을 저질렀으니 국내외적 망신을 사는 게 당연하다 할 것이다.

언론을 비롯한 여론은 몇 가지 점에서 이번 사건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박근혜 대통령이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 오기인사를 한 결과이니 만큼 대통령이 직접사과를 해야한다든가 이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인사검증 시스템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지적 등이다. 또 일부 언론은 정권을 잡은 덕에 얼떨결에 권부에 입성한 인사들의 ‘완장의식’을 거론하며 이른바 ‘친박인사’들의 자중과 진중함을 권고하기도 한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후 수습과정에서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들어 청와대 내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도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 정작 놓치고 있는 문제가 있다.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태가 지연보고됨으로써 드러난 청와대 내부의 경직된 조직문화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은 윤 전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사건이 순방팀에게 인지된 후 26시간만에야 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 사실은 박 대통령이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만찬회동에서 정확하게 29시간만에 알게됐다고 확인해줌으로써 지연보고는 사실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대외적 창구인 윤 전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공식일정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 대통령도 모르는 사이에 8일 낮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 셈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이른바 대통령 방문단의 공식수행원이나 다름없는데다 국내외 언론과의 접촉창구다. 그런데도 중도귀국이라는 건국이래 초유의 사태가 대통령의 재가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시절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서 대통령 해외순방행사를 수차례 치러본 필자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이는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사태다. 그런데 현 청와대 쪽에 밝은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 청와대 분위기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흔히 신뢰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라고 한다. 또한 이를 토대로 조직장악력을 키워왔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잣대로 사람을 골라쓰고 배신자들에게는 가차없는 무관심과 권력에서의 배제로 응징했다. 실제로 그런 과정에서 형성된 카리스마는 그의 대통령 당선에도 크게 기여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어느덧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이 근엄한 ‘여왕’처럼 여겨지기 시작하며 곡학아세와 교언영색하는 인사들만 포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심기에 맞지않는 사안은 보고를 꺼리게 되고 맘에 드는 것만 보고하게 되는 경직된 문화가 형성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속에서 대선 캠프 출신도 아닌 전문직 언론인 출신인 이남기 홍보수석이 윤 전대변인 사건을 신속히 보고한다는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연보고에는 이런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이런 청와대 내부의 분위기를 짐작해보면 왜 이남기 수석이 이른바 ‘셀프사과’를 하면서 박 대통령에게도 사과를 했는지 이해가 간다. 회사로 치면 부하직원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상관이 사주에게 사과하는 장면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정작 사과를 할 사람은 윤창중 같은 사람을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박 대통령 본인인데도 말이다.

백악관 내부를 다룬 미국 TV드라마 ‘웨스트윙’을 보면 대통령과 참모들이 수시로 노타이 와이셔츠차림으로 만나 책상에 걸터앉은 채 커피를 마시며 범국가적 사안을 토론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현재 우리의 박근혜 청와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요즘 소통이 화제다. 정치와 국민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청와대 내부의 소통도 이에 못지 않게 절실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정치부장단에게 이 사건에 대해서 끝내 사과는 하지 않으면서 “민망하다”고 했다. 헌데 정작 민망한 것은 이번 사태를 접한 국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