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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본 세상이야기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 몰락에서 배워야 할 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2일 이탈리아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그의 사퇴는 유럽 전체를 강타한 경제위기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사실은 유럽에서 ‘정치 후진국’ 이탈리아가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첫 발자국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탈리아는 과거 찬란한 로마제국의 후예 국가이지만 정치, 경제적으로는 유럽에서도 가장 문제적 국가 중 하나이다. 이탈리아는 겉보기에는 국내총생산 세계 7위로서 G8 소속국가인데다 1인당 GDP 3만4059달러(2010년)로서 손색없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지난해 정부 부채비율이 GDP대비 119%로 EU국가 중 최상위권인데도 개인소유 재산 규모는 가장 큰 나라로 꼽힌다. 재정이 악화하고 부가 편중된 이유는 만연한 탈세와 공무원들의 공공연한 비리가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적 원인 보다 더 큰 문제는 기형적으로 편재된 미디어 권력과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담합구조다. 이른바 ‘권언유착’이라 할 수 있는 문제의 핵심 장본인이 베를루스코니였다.

베를루스코니가 누구인가. 그는 1994~1995, 2001~2006, 2008~2011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13년 동안 총리를 지냈다. 원래 건설업으로 부를 쌓은 기업인이었던 그는 차츰 미디어산업과 연예오락 산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2000년 포브스 지가 집계한 개인 자산 순위에서 120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하여, 이탈리아 1위, 세계 14위의 부자에 올랐다. 그는 1960년대부터 재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돈세탁과 탈세 및 뇌물공여 등 혐의로 모두 12차례나 기소됐고 1998년에는 2년 9개월의 징역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재력을 바탕으로 1994년에 포르차 이탈리아당을 창당하여 정치에 투신, 국민연합과 북부연맹 등 타당과 연정을 구축하여 전후 최초의 우파정권을 탄생시키며 단숨에 총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는 정계 입문 후 각종 비리혐의와 ‘성 추문’사건으로 시달리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저력을 발휘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가 재기하는데 바탕이 된 것이 막강한 미디어권력이었다. 1970년대부터 지역 방송사를 사들이며 언론계로 사업 영역을 넓힌 그는 현재 자신 소유의 종합미디어그룹 ‘미디어셋’이 국내 민영채널 7개 중 3개 채널을 보유중이다. 또 최대일간지 ‘일 지오르날레’는 동생이 사주다. 그는 정계입문 후 자신의 미디어산업을 정치활동에 교묘하게 활용했다. 정치 입문 당시 그가 보유한 매체들은 ‘부패로 얼룩진 이탈리아를 구원할 성공한 CEO'로 부각시켰다. 부패 우파, 무능 좌파에 넌덜머리가 난 국민들은 방송의 선전에 따라 그를 구세주로 인식하게 됐다. 그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 단박에 총리에 올랐다.

그는 이후에도 실각 후 재기하는 과정에서 미디어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그는 자신이 사유하고 있는 민영방송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2003년 사사건건 자신을 견제해온 공영방송 RAI의 이사회에 총리의 개입을 합법화하는 미디어법을 야당의 불참 속에 통과시켜 공영방송마저 장악해버렸다. 이처럼 그가 이탈이아 언론을 총체적으로 독과점하는 바람에 특별히 해외언론에 관심을 두지 않는 보통 국민들은 해외토픽란에 등장하는 베를루스코니의 잇단 성추문 행각들을 알 도리가 없었다. 2009년 그의 별장에서 미녀들과 알몸파티를 벌였다는 추문의 경우 해외에서 화제가 된 후에야 이탈리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때문에 많은 언론학자들은 이탈리아의 언론독과점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대상으로 삼을 정도였다.

이제 다음 달이면 한국에서는 종편채널이 개국한다. 그렇지 않아도 기왕의 지상파 방송이 보수우파 편향의 외눈박이 보도를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편향보도 가능성이 큰 4개의 새로운 빅마우스가 등장한다는 점은 참으로 두렵기 그지없다. 미디어 산업의 편향성이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태가 한국에서도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