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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본 세상이야기

캠프 데이비드 산장의 숙박비는 너무도 비쌌다

미국 워싱턴DC 서북쪽 100Km 지점에 위치한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는 미국 대통령의 별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캠프 데이비드에는 골프장부터 수영, 사냥, 승마, 산보코스 등 대통령이 외부와의 격리하에 심신을 달랠 수 있는 모든 휴양시설이 완비돼있다. 때문에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이곳에서 달콤한 하룻밤 휴식을 취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이 진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됐음을 실감하게 된다고 한다.

이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을 찾은 외국 정상들에게도 가끔 문호를 개방하곤 하는데 그 빈도가 매우 드물어 이곳에 초청받는지 여부가 미국정부의 환대수준을 재는 척도로도 작용했다. 그 시초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3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를 초청한 것으로 기록돼있다. 이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9년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이곳에서 환대했고 로널드 레이건은 대처 영국 총리를 이곳에서 만났다. 최근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아베 신조 일본총리를 이곳에서 영접했다.

2008년 4월 갓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이 첫 미국 방문에 나섰을 때 바로 이 명소에서 부시 대통령의 환대를 받았다. 당시 청와대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캠프 데이비드 숙박은 처음이라며 미국의 극진한 환대를 적극 홍보했다. 언론도 이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골프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내보내며 역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고의 국빈대우를 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환대를 전하는 와중에도 국민들의 관심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이 허용될 것인지에 쏠려있었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18일 중앙일보는 김영희 국제전문대기자의 칼럼을 실었다.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저간의 사정과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숙박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던 그는 <캠프 데이비드 산장의 숙박비>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사람의 확실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있다”며 과거 두 대통령이 부시정권과의 불편했던 사연을 소개한 뒤 이 대통령과 부시 간에는 ▲독실한 기독교인 ▲기업가 출신 ▲이념적으로 보수우파에 속하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조짐이 좋을 수밖에 없다”며 낙관적 결과를 전망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미군기지 이전 비용 확대부담, 쇠고기 수입 등 미국의 요구사항이 많음을 적시하고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 초대받은 손님이 치르는 비싼 숙박비’를 우려했다.

그런데 최근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이영희 대기자의 우려는 적중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위키리키스에 따르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타결이 한미정상회담과는 관련이 없다는 당시 정부발표는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을 보면, 이명박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다. 다만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4월9일 총선 이후 공식 발표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고 이 사항에 대해 미국 쪽에 양해까지 구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특히 이 대통령 취임전에 인수위 멤버이던 최시중 현 방송통신위원장과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이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와 오찬하며 이 대통령의 방미와 쇠고기 협상을 연계한 내용은 너무도 적나라하다. 이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약속한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숙박비’ 대가로 쇠고기를 양보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이번 위키리키스가 폭로한 주한미대사관의 외교전문에는 이 밖에도 한국정부의 대미저자세 외교를 보여주는 내용들이 허다하다. 전문에 거론된 당사자들은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청문회를 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한미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기 때문이다./2011.09.19


2008년4월18일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골프카트에 태운 채 파안대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