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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로 본 세상이야기

근조(謹弔) 오세훈!!

서울시 주민투표가 법적 투표율 미달로 끝났다. 오세훈 시장은 이로써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 그의 정치적 장래에 대해 여러 가지 전망이 제기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제 그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재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25.7%의 투표율은 사실상 여권의 승리”라며 앙앙불락하는 일부 보수세력들이 “복지 포퓰리즘에 단기필마로 맞선 보수의 아이콘”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나는 한 때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치러진 당시 총선은 여야간에 ‘인재 영입전’이 치열했다. 그 와중에 환경운동가 출신 방송진행자로 인기를 모으던 ‘젊고 잘생긴’ 오세훈 변호사는 여야 모두에게 영입대상 1순위였다. 그는 1991년 아파트 일조권침해 소송을 맡아 승소함으로써 처음 유명세를 탔다. 이를 계기로 환경운동연합의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MBC의 인기 법률프로그램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등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성가를 올렸다.

장외 블루칩으로 주가를 올리던 그는 한나라당을 선택해 서울 강남을에서 무난히 당선됐다. 그는 소장파들과 함께 ‘미래연대’를 구성, 검찰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로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이어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 개정을 주도했다. 그의 정치행보에서 클라이막스는 5·6공화국 인사들을 향해 ‘아름다운 퇴진’을 요구하며 2004년 1월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었다. 그의 ‘논개식 불출마’ 후폭풍 탓에 한나라당은 당시 현역 의원 27명을 퇴진시켜야만 했다. 이 덕분에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거센 탄핵 역풍을 뚫고 그나마 121석을 건질 수 있었다.

정계 은퇴후 그는 나름 초연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가 철인3종경기를 완주하고, 책을 낸 데 이어 킬리만자로산을 등반하는 등 ‘이미지 쌓기’를 계속하는 데 대해 “다시 정치하려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일각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예감은 적중했다. 그는 2006년 서울시장 선거기간 중 선호도 1위를 달리던 민주당 강금실 후보에 대한 대항마로 떠오르며 일거에 한나라당 후보를 꿰찬 뒤 선거에서도 승리, 불과 2년 만에 화려하게 정치권에 컴백했다. 그는 이어 지난 해 재선에도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유난히 이미지에 집착하고 식언을 밥먹듯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치인의 이미지 행보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도 어디까지나 금도가 있는 법이다. 몸짱 만들기와 방송출연을 통한 이미지 제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내실을 쌓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 콘텐츠가 얼마나 천박한지는 이번에 여당의 반대마저 무릎쓰고 주민투표를 강행한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어린이들의 ‘밥’을 놓고 벌인 심술도 문제려니와 법률적으로도 하자가 많은 사안을 굳이 투표에 부친 걸 보면 그가 과연 법률가 출신인가 의문점이 든다. 또한 서울시장 재임시 ‘디자인 서울’이라 하여 겉치레행정에 치중한 사실도 역시 그의 이미지 중시 정치와 맥을 같이 한다.

식언도 마찬가지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한다며 탄액안 서명 발의에 불참했다가 정작 본회의 표결에선 찬성표를 던졌다. 총선 불출마 후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부인하다 여론조사 결과가 좋게 나오자 이를 슬그머니 번복하고 출마했다. 또한 지난해 재선 출마 때에는 시장 직 완수를 수차례 공약했으나 역시 이번에 이를 번복했다.

초년 정치시절과 이후의 행보가 이처럼 판이한 이유는 왜일까? 여의도의 중론처럼 ‘대권 플랜의 일환’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점이 그가 이제 재기에 어려운 이유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마저 그에대해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게 생각한다”고 비판한 것을 보면 그가 국민보다는 자신의 대권행보만을 염두에 둔 정치인이었다는 점이 이번에 만천하에 드러난 것 같다. 그가 기획하고 주연한 주민투표 결과는 ‘정치적 사약(賜藥)’이란 부메랑이 돼가고 있다. <201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