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로 본 세상이야기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화두 일기가성 유감

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신묘년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는 사자성어로 일기가성(一氣呵成)을 선정했다. 일기가성이란 16세기 중국 명나라 시인 호응린(胡應麟)이 시 평론집인 <시수(詩藪)>에서 두보(杜甫)의 작품 <등고(登高)>를 평하며 사용한 표현으로 ‘문장의 처음과 끝이 일관되고 빈틈없이 순리에 따라 짜여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성어를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내듯이 좋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고 이뤄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연말연시의 사자성어 화두는 대개 유력 정치인들이 과거 한학에 밝은 시인묵객들의 과세 풍습을 흉내 내 그럴듯한 함의를 과시하는 풍류로 활용되어왔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전문 정치가가 아니었음에도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후 줄곧 사자성어를 제시해왔다. 이 대통령은 2007년에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하늘이 백성의 뜻을 살펴 비를 내린다’ 는 의미의 한천작우(旱天作雨)를, 집권 첫해인 2008년에는 ‘화합의 시대를 열고 해마다 풍년이 든다’는 의미의 시화연풍(時和年豊)을, 집권 2년차인 2009년엔 ‘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의 ‘부위정경(扶危定傾)을, 지난해에는 ‘지금의 노고를 통해 오랫동안 안락을 누린다’는 의미의 일로영일(一勞永逸)을 신년 화두로 내세웠다.

올해로 5년째 신년 화두를 제시한 셈인데 2007년의 화두를 제외하곤 도무지 당시의 시국에 대한 적확한 현실인식과는 괴리감이 커 아쉽기 그지 없다. 2007년의 화두인 한천작우의 경우 대선을 앞둔 이 대통령으로서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비’를 자신의 환생으로 기원했을 터이니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집권 첫 해인 2008년 이 대통령은 ‘화합’을 주요 모토로 한 시화연풍을 화두로 제시했으나 정작 집권 첫 해엔 전방위적으로 지난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작업에 나섰다. 졸속적으로 미국과 소고기협상을 타결하는 바람에 거대한 촛불저항에 부딛혔을 뿐 아니라 버젓이 임기가 남아있는 공기업과 정부투자기관은 물론 문화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기관장들에 대해 무리한 물갈이를 몰아부쳤다. 특히 KBS 사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에게는 치졸한 강압을 행사하는 바람에 결국 법정 소송으로 비화해 정부기관이 패소하는 지경에 이르기도했다. 화합은 커녕, 대결과 불신만을 조장한 셈이다.

2009년의 경우 국가적 위기를 바로잡고자 부위정경을 내세웠으나 도리어 위기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해는 유감스럽게도 신년벽두인 정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 철거민 참사가 터져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속도전이 초래한 필연적 참사였다. 뿐만 아니라 새 정부의 정치보복적 수사과정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하이라이트는 그해 7월 미디어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었다.

역시 지난해의 경우 사실상 ‘고진감래(苦盡甘來)’를 의미하는 일로영일을 화두로 내세웠으나, 국민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은 ‘달콤한 안락’을 누리는 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허울뿐인 복지와 부자감세 결과 각종 지표가 보여주는 경기호황은 서민들에게 체감경기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올해 내건 일기가성도 예년처럼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특히나 심려스러운 것은 평소에도 토목공사식 ‘속도전’에 유난히 집착하는 이 대통령이 ‘일을 단숨에 이뤄내야 한다’는 화두에 집착해 지난 3년의 시행착오의 전철을 답습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대통령은 올 신년사 연설문 회의 때 정치권과의 소통부족을 지적하는 일부 참모들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만났는지 아느냐”며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고 한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백성은 존귀하고 임금은 가볍다’는 의미의 ‘민귀군경(民貴君輕)’을 선정했다. 이 대통령은 민귀군경의 의미를 찬찬히 곱씹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