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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언론인 윤승용

민주 언론의 깃발, 언론 노동조합 당시 우리는 매일 소모임을 계속하며 전의를 다지는 한편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당시 서울 YMCA 시민중계실 간사로 일하는 대학 친구 윤석규(현재 민주당 안산단원을예비후보)에게 부탁해 우선 노동조합 결성식을 할 공간을 확보했다. D데이를 언제로 할 것이냐가 논란이었으나 동아일보에서도 은밀한 노동조합 부활을 추진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새삼 전의를 불태우면서 “이왕이면 노동조합 부활 첫 타자가 되자”고 결의를 다졌다. 노량진 조기축구회가 노조? 우린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서두르고 서두른 끝에 그해(1987년) 10월 29일 새벽 7시로 날짜를 정했다. 난 윤석규에게 부탁해 10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YMCA 친교실을 예약했다. 혹시라도 회사나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눈치 챌까봐 예약자도 가명으로 했.. 더보기
5공 시절의 보도지침 지금 되돌아보면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언론은 사실상 언론이 아니었다. 방송은 매일 저녁9시만 되면 매일 첫머리에 전두환 대통령의 동정을 보도하는게 관례였다. 이른바 ‘땡전 뉴스’란 게 바로 이를 말한다. 9시 시보가 ‘땡’하고 울리면 이어 곧바로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되는 뉴스가 1년 365일 반복됐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에 부딪힌 언론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용비어천가는 신문도 못지않았다. 모든 신문의 1면에는 대통령의 그날 행사 관련 사진이 들어가는게 원칙이었던 것이다. 공보처와 안기부 등에서 수시로 편집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정권에 도움이 되는 기사는 크게 다루고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는 아예 빼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 조그맣게 다루도록 지시했다. 정부기관이 편집권을 능소능대로 행사되.. 더보기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배의 제안을 받은 후, 나는 얼마 동안 진로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길,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선배들과 함께 학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던 것들, 여러 가지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된 기자가 되어 바른 언론인이 되자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다. 드디어 언론인의 길에 들어서다! 당시 대학 동료 2명(노창준, 양재원)과 함께 신림사거리에서 ‘오월서점’이란 사회과학서점을 운영 중이던 나는 서가 한구석에 꽂혀 있던 ‘상식백과’와 ‘언론사 시험 기출문제집’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언론사 시험 준비에 나선 것이다. 한 두어 달여 준비를 하고 있던 중 1985년 2월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가 견습 기자를 뽑는다고 사고를.. 더보기
옳은 길을 회피하지 말라 나는 말미를 얻은 이틀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당시 나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이신 공의창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고교 1학년 때 담임이셨던 공 선생님은 항상 우리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함께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로부터 1주일여 후 나는 신림동 사거리 근처에서 한 선배로부터 두툼한 크기의 유인물 뭉치를 받았다. “학내에서 유인물을 뿌리기로 했는데 너는 인문·사회대쪽에서는 문제학생으로 얼굴이 많이 알려져 위험하니 자연대와 공대 쪽에 살포하라”는 말과 함께... 지긋지긋한 유신의 끝 나는 그 유인물을 가방에 담아 좌석버스를 타고 학교에 들어간 다음 자연대와 공대의 빈 강의실, 실험실, 그리고 휴게실 .. 더보기
내 인생으로 들어온 언론 어린 시절, 사람들은 누구나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그것은 때때로 막연한 기억으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대로 직업이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나와 언론의 인연은 그렇게 코흘리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생각해볼 수 있지만, 뒤돌아보면 그랬기에 현재의 내가 있었던 것 같다. 공짜신문이 가져다준 인생의 전환점 내가 막연하게나마 언론인(당시로서는 언론인이라기보다는 신문기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구독했다. 당시 이리(현재의 익산시) 시내에서도 걸어서 30여분이나 걸리는 변두리였던 익산군 북일면 금강리 운용부락(현재의 익산시 금강동)에는 키 큰 미루나무에 안테나를 달아 겨우 소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