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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추천사를 통해 본 윤승용

윤석인[희망제작소 부소장]


우린 정말 오래된 친구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쭉 함께 다녔고 같은 언론계에서 밥벌어먹으며 오늘까지 무려 42년을 변함없이 친구로 지냈다. 이쯤 되면 가끔은 서로 얼굴 보기가 지겨울 만도 한데, 아직 철이 덜 난 탓인지 만나기만 하면 이내 술잔을 기울이며 낄낄거리고 떠들어댄다.


우리를 묶어주는 끈은 의리였다. 제법 공부를 잘했지만 출세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우리에게 좀 더 나은 재능이 있다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친구와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학생운동을 하고 언론계에서 함께 노조 위원장을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연히 공부나 출세 따위의 기준으로 친구들을 골라 사귀지도 않았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지만 불평 없이 늘 웃어넘기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관계에도 변화가 있었다. 40대 중반을 전후해 그가 제도권 정치에 관심을 보이면서부터다. 나는 <한겨레>에서 정치부 기자를 꽤 오래 했는데, 그때 정치권의 진면목(?)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직접 정치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물론 정치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능력 있고 합리적인 분이 정치권에 진출할 경우 크게 반대하진 않았다. 지금은 필요악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공공선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버리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보기에 ‘순둥이’인 그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마음 착한 순둥이라고 정치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왠지 걱정이 앞섰다. 혹여 상처만 입지 않을까? 걱정이 너무 컸던 탓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술자리에서 그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할 때에는 비판의 날을 곧추세웠고, 민주당원으로서 정치 현안에 대해 얘기할 땐 너무 당파적이라고 추궁했다. 과이불급(過而不及)이라는데, 내가 너무 가혹하게 몰아치는 건 아닌지 문득 스스로를 되돌아본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좀체 반론을 펴지 않고 늘 차분하게 나의 비판을 경청했다. 본인은 이미 정치인이고 나는 아직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라는 점 때문에 그랬을 것으로 짐작한다. 미안하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 그가 칼럼들을 모아 책을 펴낸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문학청년답게 그의 글은 유려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의리와 정의의 가치도 저변에 흐른다. 사실(fact)과 합리는 실종되고 정파적 시각만이 난무하는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이만큼 엄정하고 합리적인 글이 더 나오긴 어려울 터이다. 하여 나는 그의 소중한 생각과 고민들이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새로운 정치의 빛과 소금이 되길 희망한다.


출처 : 윤승용(2011), 다시, 원칙과 상식위에 선 대한민국을 꿈꾸며, 푸른나무,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