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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추천사를 통해 본 윤승용

문재인[전 청와대 비서실장] 눈물을 삼키고 웃음으로 우리를 위로한 사람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3월, 청와대에서였다. 나는 청와대를 떠난 지 10개월 만에 비서실장으로 다시 공직에 복귀했을 때였고, 그는 내가 가기 3개월 전에 이백만 수석의 후임으로 홍보수석에 발탁돼 일하고 있었다.

임기 마지막 해 마지막 비서실장이어서 이전보다 훨씬 비장한 자세로 임해야 했을 때였다. 나는 취임사에서 “흔히 임기 후반부를 하산(下山)에 비유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며 “참여정부에 하산은 없다”고 강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 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라고 말했다. 또 “청와대가 부당한 권력을 행사해선 안 되겠지만, 법과 제도가 정한 책임을 행사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겠다”며 “도덕성이란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말년의 해이를 각별히 경계하자”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지지율은 지지부진했다. 국정 운영 여건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내가 부임했을 때 홍보수석실은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라는 새로운 취재지원시스템을 추진하면서, 말 그대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언론의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상황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런 작업을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고 있던 사람이 윤승용 홍보수석이었다.

사실 그는 참여정부와 특별한 인연이 없다. 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던 당시 그는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으로 근무 중이어서 대선과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또한 참여정부 초기에는 한국일보 사회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오히려 권력에 대해 견제와 비판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가 오래 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도 애정 어린 고언을 칼럼으로 여러 차례 썼지만, 기본적으로 권력에 대해 감시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언론인의 기본에만 충실했던 사람이었다.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후, 대통령이 그를 홍보수석으로 발탁했던 배경을 알고 그를 다시 보게 됐다.
대통령은 그가 오랜 시절 언론노조와 한국일보 노조에서 치열하게 언론민주화 운동을 한 사실, 언론개혁을 위해 여러 분야에서 애써 온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언론계 마당발로, 많은 언론인들과 허울 없이 소통하면서 신망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가 홍보수석으로 온다고 했을 때 그의 많은 지인들은 말렸다고 들었다. 아마도 ‘정부 끝물에 설거지하러 갈 일 있느냐’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옆에서 본 그는, 참모로서 자기를 던지는 사람이었다.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만 해도, 방향과 취지는 옳지만 언론계 지탄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일이어서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언론계 출신의 홍보수석에게 융단폭격처럼 집중된 당시 언론보도를 생각하면,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짐작된다.
그 일 뿐 아니라 당시 참여정부가 추진한 여러 정책의 마무리를 위해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의 사람됨을 더 잘 알게 된 건 오히려 참여정부가 끝나고 나서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탄압에 대처하기 위한 각종 모임과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백수가 되고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늘 밝고 씩씩한 표정으로, 집회나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유쾌한 활력소가 돼 줬다. 그라고 분노가 없었을까. 그라고 속이 편했을까.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고 웃음으로 우리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사람이다.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전에 힘든 상황에서도 참여정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그가 끼면, 침울했던 분위기가 나아졌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나서 그는 봉하상가에 몇날 며칠을 머무르며 상주로서 극진한 정성을 다했다. 이호철 전 민정수석과 함께 국민장 봉하장의위원회 상황실장을 맡아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장례절차 등을 성공적으로 협상해 내는 한편, 그 엄청난 국민장 준비절차 제반 상황을 매끄럽게 총괄했다.

대통령님을 떠나보낸 뒤에도 김종민 전 대변인 등과 팀을 짜, 대통령님을 사지에 몰아넣은 이명박 정부의 전모를 파헤친 실록 <내 마음 속 대통령> 편찬에 앞장섰고, 뒤이어 참여정부시절 대통령을 곁에서 모신 참모들의 회억록 <님은 갔지만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란 책을 기획해 발간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윤승용 수석은 참여정부 수석 가운데 가장 뒤늦게 비서실에 합류했지만 가장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참모로서 마지막까지 제 역할을 다한 사람이다.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진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시각과 따뜻한 가슴, 멀리 보는 혜안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를 더 널리 확산시키는 일에 중히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 문재인


출처 : 윤승용(2011), 다시, 원칙과 상식위에 선 대한민국을 꿈꾸며, 푸른나무,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