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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들/성명서와 보도자료

선거구 획정에서 꼼수는 사라져야


선거관련 용어 중에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정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은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가 자기 소속당인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구분하였는데, 그 모양이 샐러맨더(salamander : 도롱뇽)와 같아서 상대편 당에서 샐러 대신에 게리의 이름을 붙여 게리맨더링이라고 비난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과거에 게리맨더링은 숱하게 등장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지방의원 선거과정에서도 해당 지역에 출마하는 유력자들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형태로 지역구를 떼고 붙이고, 자르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의 생활편의나 전통적 지역 정서와는 전혀 관련 없이 선거구가 그야말로 도롱뇽처럼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확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용인시의 경우 시민들 대부분이 잘하면 2개의 선거구가 늘어날 것으로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지역 정가에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 설들을 요약하자면 요즘 유행어인 ‘꼼수’란 말이 떠오릅니다. 사실 용인 지역 선거구 증구와 관련해서는 올 초부터 각종 설이 분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설의 저변에는 특정인의 이해가 반영된 꼼수가 개입됐을 개연성이 엿보입니다.

첫 번째로 등장한 꼼수는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선거구 획정기준은 2011년10월말 인구기준으로 상한선이 310,406명, 하한선이 103,469명입니다. 여기에서 상한선은 인구가 이 선을 넘으면 분구가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하한선은 이 선 밑으로 떨어지면 다른 곳과 합구를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0월말 현재 용인시 전체 인구는 893,950명이고 구 별로는 처인구가 210,594명, 기흥구는 367,700명, 수지구는 315,656명입니다. 단순히 인구 수치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기흥구와 수지구는 상한선을 넘어서서 분구 대상지역입니다. 다만 수지구는 상한선을 조금 넘어선 정도여서 분구 가능성은 유동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현재 기흥구인 동백동의 행정구역을 처인구로 변경하는 안이 등장했습니다. 인구 64,748명인 동백동을 처인구로 바꾸면 처인구 인구는 275,342명, 기흥구 인구는 302,952명이 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흥구를 분구하지 않아도 되고, 역시 처인구도 상한선에 미달해 분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용인시 전체로 보면 국회의원 숫자가 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지난해 용인시장 선거 당시 동백동에서 민주당 후보가 가장 큰 표차이로 이긴 지역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갑니다. 현재 민주당 소속인 처인구 우제창 의원으로서는 좋은 표밭이 편입해 들어와서 좋고, 한나라당 소속인 기흥구 박준선 의원도 나쁜 표밭을 떼어내는 것이어서 좋다는 의미여서, 이른바 두 현역의원 입장에서 보면 ‘누이좋고 매부좋고’식의 결과가 됩니다. 이 설의 출처는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두 의원 관계자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분들의 양식을 믿습니다. 용인시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비록 헌법기관이긴 하지만 용인시 이익을 대변할 국회의원이 한 석이라도 늘어나길 원하는 지역구 의원들이 취할 행태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소문은 용인시민들의 반발, 특히 당사자인 동백동 주민들의 반발이 일면서 슬그머니 가라앉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두 번째 꼼수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꼼수는 용인시 기흥구와 수지구를 한 선거구로 합하되 갑, 을, 병으로 나누자는 방안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수지구도 현재 상한선을 넘어선 상태여서 분구를 해야하는데 그러면 용인 전체로는 이번에 2개의 지역구가 늘어나는 셈이어서 타지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기흥구와 수지구를 합해서 갑을병으로 나누면 1석만 늘어나게 돼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경우 수지구의 죽전동 일원이 기흥구 구성지역과 합해져서 이른바 ‘을’지역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방안은 현재 모 정당의 수지구 지역위원장이 수지구를 버리고 죽전지역이 포함된 지역구로 옮겨가기 위해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안은 세가지 이유에서 꼼수입니다.

첫째는 이번에 사실상 임무를 종결한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이 방안에 대해 단 한번도 논의된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통상 여야간에 구성되는 정치개혁특위에서는 선거구를 최종적으로 획정할 때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논의됐던 방안 가운데 하나를 참고하는 경우는 있어도 논의조차된 적이 없는 방안은 채택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선거구를 획정할 때 기왕의 법정행정구역을 최대한 존중하는 게 관례입니다. 즉 현재 수지구와 기흥구라는 행정구역을 건드리지 않고 획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개의 별도 구를 합해서 다시 갑, 을, 병 3개로 나눈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구를 합해 3개로 나눌 경우 향후에 용인시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이번에 기흥·수지 갑, 을, 병 3개로 나눠버릴 경우 앞으로 두 구의 인구 합계가 90만을 넘어서지 않으면 추가로 분구되기가 어렵습니다. 즉 용인시 전체 인구가 100만이 넘어서도 국회의원 숫자가 5명으로 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현재 처럼 기흥구와 수지구를 별도로 분구하면 향후 수지구의 인구가 조금만 더 늘어도 차차기인 20대 국회의원 선거때 자연적으로 수지구는 2개구로 분구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꼼수는 사리에도 맞지 않으려니와 용인시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용인시의 경우 수지구와 기흥구가 각각 분구되거나 최소한 기흥구라도 우선 분구하는게 순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용인시가 국회 선거구 획정위원회 8차회의 때 제출한 안, 즉 수지구는 현재대로 존치하되 기흥구는 신갈동, 영덕동, 구갈동, 상갈동, 기흥동, 서농동 등을 갑으로, 구성동, 마북동, 동백동, 상하동, 보정동 등을 을로 분구하는 안이 합리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