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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로 본 세상이야기

눈물젖은 빵과 공짜밥

EBS의 <지식채널e> ‘공짜밥’ 편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곧 징계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방통심의위는 올 초부터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시청자의 민원이 제기됐다며 이 프로그램에 대해 심의절차를 논의해왔다.
  지난해 12월 20일 방영된 ‘공짜밥’ 편은 무상급식 지원 대상 아이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제작진이 발췌해 재구성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가 무상급식 예산 책정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던 시기와 겹쳐 더욱 화제가 됐다.
  무상급식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겸 나도 인터넷으로 이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전체 4분42초짜리의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배경음악을 깔고 어린 학생들의 사연을 나열한 평범한 형식이었다.
하지만 결식아동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구절절한 그 사연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차마 공감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스토리가 가득했다.
  그 가운데 몇 개를 들어본다.

“새학년이 될 때마다 이런게 무섭습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씀과 가정통신문을 볼 때마다 매우 떨립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한부모가정 증명서를 떼어오라는데...(학교교육비통합지원신청서를 배경으로)”“저희집 사정이 그래서 (급식비)신청서 내야하는데, 애들 앞에서 내야되니까 애들이 이상하고 안 좋게 볼까봐...”“오늘도 엄마한테 전화하면서 울었습니다. 너무 창피하다고”“선생님이 칠판에 ‘급식지원신청서 제출’이라고 쓰시기에 철렁했지요. 제 이름을 부르실까봐요”

  이 프로그램은 그간 학교 무상급식에 대해 여야간에 오갔던 많은 논란, 특히 여당이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가했던 공세가 정작 해당 학생들의 입장을 헤아려보기나 했는지를 엄중히 묻고 있었다.
무상급식비 신청서를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제출해야하는 가난한 학생들의 상처받은 영혼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1960년대 후반 필자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매년 신학기가 되면 연례적으로 ‘학생생활환경조사’라는 것을 실시했다. 그런데 조사가 설문지를 나눠주고 써내라는 식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거수형태로 진행된 게 문제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집에 전화있는 집 손들어”“텔레비전 있는 집 손들어”“전축 있는집?”
그 때만해도 한 동네에 전화와 TV세트가 겨우 한 두대나 있던 시절이어서 이 같은 문명기기를 보유한 집의 아이는 보무당당하게 손을 들곤 했다.
  당시 유행하던 ‘광석라디오’마저 없었던 필자는 항상 이때만 되면 어깨가 움츠려들곤 했었다. 그 때 받았던 위축된 마음의 상처는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무상급식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가 어느새 정치권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차기 대권주자들은 서로 앞 다퉈 공약을 내세우는가 하면 정당간에는 재원조달문제 등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중이다.
  복지문제가 정가의 이슈로 등장한 것은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다행이다. 하지만 무상급식의 경우는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의 선택이 끝난 사안으로 보인다.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교육감후보가 수도권인 서울과 경기도에서 승리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기성세대가 초등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마냥 ‘퍼주기’라고 비하하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이다. 무상급식을 받아야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어려운 형편의 청소년들이 겪어야할 마음의 아픔을 제발 ‘역지사지(易地思之)’했으면 싶다. 특히 어릴 적 ‘끼니걱정을 밥 먹듯이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다시 한번 재고해주길 기원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란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눈물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슬픈 밤을 한 번이라도/침상에서 울며 지새운 적이 없는 자/그는 당신을 알지 못하오니, 하늘의 권능이시여.//당신을 통하여 삶의 길을 우리는 얻었고/불쌍한 죽을 자들 타락케 하시어/고통 속에 버리셨으되/그럼에도 저희는 죄값을 치르게 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눈물젖은 공짜 밥’을 먹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나 다름없다./2011.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