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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리즘

명계남, 여균동의 유쾌한 실험--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


한국 연극영화계의 이단아인 명계남과 여균동이 모처럼 무대로 돌아왔다. 한동안 충무로 영화판과 대학로 연극판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두 사나이가 지난 1일부터 서울 홍익대 앞 소극장 ‘예’에서 <아큐-어느 독재자의 고백>이란 이색 타이틀의 연극을 공연중이다.

명계남, 그는 처음 보는 순간 ‘어찌 저런 얼굴로 연기자를 할 수 있을까’ 싶게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지만 연기에 대한 내공은 이미 영화판에서는 잘 알려진 바다.

1973년 연극계에 데뷔한 그의 필모그래피만 살펴봐도 그가 간단치 않은 연기자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의 출연작은 <호텔리어(2001)> <조폭마누라(2001)> <반칙왕(2000)> <이재수의 난(1999)> <박대박(1997)> <초록물고기(1997)>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6)> <돈을 갖고 튀어라(1995)>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등이고 그가 제작한 작품은 <오아시스(2002)> <박하사탕(1999)> <초록물고기(1997)> 등 화려하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의 회장을 맡는 등 정치적 외도에 나서 주목을 끌었다. 특히 그는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을 때 상주를 자처하고 그의 빈소를 지켰다. 노 대통령의 유해가 실린 영구차가 봉하마을을 떠나던 날 그가 영구차를 가로막고 처연하게 울부짖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는 그 후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듯 슬픔에 겨워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한동안 칩거했었다.

명계남보다 나이가 여섯 살 적은 여균동도 명 씨 못지않게 독특한 인물이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부터 연극판을 기웃거리던 그는 한때 학생운동과 딴따라 생활을 겸하다 사회에 나와서는 특유의 끼를 어쩌지 못하고 결국 영화판으로 돌아온다. 1993년 청룡영화제 신인연기상, 1994년 대종상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충무로에 데뷔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와 충무로 영화판이 선호하는 ‘상품’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상업적 측면에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하고 고전해왔다.

이처럼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선수들이 모처럼 손을 잡고 만든 연극은 난해한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이색적이다. 제목 ‘아큐’는 명계남이 극 중에서 연기하는 독재자의 이름으로 코르마민주공화국이라는 가상의 국가 통치자 아르피무히 마쿠의 앞뒤 한 글자씩을 따서 지었다. 물론 중국 근대소설가 루쉰(魯迅)의 소설 <아큐정전>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이다. 루쉰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는데도 민족주의 의식이 없는 중국 인민의 무지몽매함을 깨우치기 위해 이 작품을 썼었다.

대본을 쓴 여균동도 이 점을 노린 것 같다. 독재자 아큐가 동물학대죄로 처벌받기 직전 독재에 관한 독백을 연습하는 게 줄거리인 이 연극의 말미에서 독재자 아큐로 분한 명계남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내가 쥐새끼라면 너희들은 개새끼야.”

내용 못지않게 극의 형식도 실험적이다. 무대 뒷 배경에는 수시로 트위터 화면이 투사된다. 그러면 이에 대한 즉답이 무대 위와 객석사이를 오간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이 최근에 언급해서 논란이 된 “농사란 게 원래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하는데 배추 값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거 아니냐”는 내용이 화면에 뜬다. 그러면 카메오로 출연하는 여균동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관객에게 물어보는 식이다.

또한 연극표를 끊어 입장하는 대신 입구에서 나눠주는 봉투를 들고 연극을 본 뒤 나올 때 성의껏 요금을 내는 ‘후불제 자율요금’을 실시 중이다. 마치 교회에서 헌금하는 방식인데 도대체 수입이 보장될까 우려됐지만 아직까지는 좌석이 꽉 차는데다 제법 큰 손 관객이 있어 괜찮단다.

이 연극의 작품성 여부는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우리 영화계의 소중한 자산인 두 사람이 이번 연극을 계기로 다시 방향타를 잃고 슬럼프에 빠져있는 우리 영화계를 살찌우는 데 정력을 불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0.10.10